설악산 흘림골-주전골 산행기
설악산 흘림골은 설악산과 점봉산의 경계인 한계령에서 44번 국도를 따라 양양 방면으로 2.6km 정도 내려간 지점의 오른편에 있는 계곡이다. 설악산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는 지역이기는 하나 소위 남설악 지역인 점봉산 자락에 있으며, 주전골 상단이다.
한계령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오른편에 보이는 기암괴봉들이 만물상과 칠형제봉이고, 만물상 한가운데에 흘림골이 있다.
점봉산(1,424m)은 설악산과는 별개의 독립성이 강한 덩치 큰 산으로 백두대간 특징인 전형적인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을 띠고 있다. 즉 서-남 쪽은 육산이고, 경사가 완만하여 세계적인 희귀식물인 한계령풀, 모데미풀, 금강초롱 등 법정보호식물 30여종이 자라고 있으며, 사향노루, 산양, 하늘다람쥐 등 천연기념물 30여종이 서식하고 있다. 그래서 1982년 설악산과 더불어 점봉산 일대가 유네스코로부터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비하여 동-북쪽은 가파른 경사의 암봉이 무성한 지대라서,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계곡엔 수많은 폭포와 소, 담이 연이어 있어서 흘림골, 주전골 등 절경을 연출하고 있다. 외설악, 내설악 쪽의 암릉과 경관이 웅장하다고 한다면 남설악 쪽의 암봉들은 아기자기하게 늘어서 있어서 애잔한 아름다움이 있다.
흘림골은 계곡이 깊어서 안개가 자주 끼고, 해가 일찍 지므로 마치 날씨가 흐린 듯하다고 하여 ‘흐린 골’이라 하던 것이 ‘흘림골’이 되었다고 한다.
흘림골이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즉 무단으로 주목을 벌채하는 등 훼손이 심해 1985년 이후 자연휴식년제에 들어가 20여 년 동안 출입을 통제하여 속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금강산 관광이 실현됨으로써 관광객이 그쪽으로 몰려가므로 오색지구 상인들의 주민 숙원에 의해 2004년 가을에 개방되었다.
수해 때 굴러 내려온 바위
그러나 2006년과 2007년 연이은 수해로 출입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게 피해를 입어 등산로의 80%를 새로 건설하다시피 복구하여 다시 개방하였다.
한계령에서 가까워 접근하기가 쉽고, 주전골 바로 위에 연이어 있어서 대개 연계산행을 한다. 산행코스는 흘림골입구에서 등선대 1.2km, 등선대에서 십이폭포 1.4km, 십이폭포에서 주전골갈림길 0.5km, 용소폭포 왕복 0.6km, 주전골갈림길에서 오색약수 2.7km여서 주전골과 연계를 해도 전체 길이가 6.8km, 산행시간은 쉬엄쉬엄 가면 4시간, 부지런히 가면 3시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편안한 코스라서 산행이라 하기엔 어색한 그냥 하이킹이라 불러도 좋을 만한 곳이다.
한계령에서 내려가면 왼편에 승용차 5~6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이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흘림골로 들어가는 신혼부부들을 내려주고 태우러 오던 간이 주차장이다. 기암과 폭포와 소 등 비경이 숨어 있고, 특히 여심폭포의 물을 받아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서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아든 곳이었다.
주차장에서 길을 건너 밑으로 30m 정도 내려가면 흘림쉼터 표지판이 있는 흘림골 입구가 나온다. 흘림5교 다리 옆에 수해복구비가 있고, 쉼터의 큰 바위가 수해로 인해 굴러 내려온 것이라 한다. 그렇게 큰 바위조차 굴러 내려올 정도이니 폭우로 인한 물길의 위력을 짐작할 만하다.
그리고 쉼터 안쪽 공원지킴터 건물 옆의 나무계단이 산행기점이다. 산행기점에서 여심폭포를 향해 올라가면 대부분 계단 길이 이어지고, 등산로 오른쪽 계곡은 홍수로 인한 훼손이 심각해서 만산창이가 된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안쓰럽기만 하다.
바위에 이끼가 끼고, 계곡에 야생초가 자라서 포근한 옛 모습이 되살아나려면 몇 십 년이 걸릴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기후 온난화로 인한 홍수가 연달아 일어날 테니 자연의 원상 복구란 영영 불가능한 것인가.
나무 데크 계단 길을 사뿐히 오르는 여인, 매일산악회 산악대장 물안개님
그런 길을 15분 정도 올라가면 길가에 서 있는 이정표에 ‘등선대 0.6km, 흘림골입구 0.6km’라 적혀 있고, 거기서 10여분, 산행기점에서 25분 정도 올라가면 오른편에 여심폭포가 있다. 폭포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닌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곳에서 오른편을 뒤돌아보면 여심폭포가 있다.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흘림골의 명물 여심폭포는 높이 20m 정도의 작은 폭포이다. 계곡이 짧아 수량도 적어 한 줄기 가느다란 물줄기가 흐른다. 여성의 깊은 곳을 닮았다 해서 여심(女心)이 아닌 여심(女深) 혹은 여신(女身) 폭포라 하며, 보기에도 민망한 모습이지만 여기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 때문에 신혼부부의 단골 경유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계단으로 되어 있어서 직접 물을 받아 마실 수 없어서 많은 아들을 놓치고(?) 있는듯하여 안타깝다. 그리고 흘림골이란 바로 이 여심폭포에서 흘러내린 계곡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말도 있지만 지형으로 봤을 때 여심폭포에서 흘러내린 계곡이라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선녀탕에서 일곱 선녀가 목욕을 하는데, 하늘에서 몰래 따라 내려온 선관(仙官)이 가장 예쁜 두 선녀의 옷을 숨겼다고 한다. 옷을 잃는 두 선녀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애달아 하다가 한 선녀는 옥녀폭포가 되었고, 다른 한 선녀는 여심폭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선관은 뒤늦게 없어진 두 선녀를 찾으려고 대청봉으로 올라가다가 지쳐서 도중에 주저앉아 폭포가 되어버렸다고 하는데, 그 앉은 자리를 독주골이라 하고, 그 폭포를 독주폭포라 부르게 되었단다.
이때 선관이 숨긴 선녀들의 옷이 폭포수에 떠내려가서 오색리 쪽의 치마폭포가 되었다고 하며, 두 선녀가 변해서 이루어진 옥녀폭포와 여심폭포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음수, 독주폭포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양수라 하고, 양수와 음수의 조화로 오색의 약수가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심폭포 부근에서 뒤쪽을 올려다보면 칠형제봉이 도열해 있고, 거기를 자세히 살피면 그 속에 큰 남근석이 보여 이곳 여심폭포와의 사이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여심폭포 위쪽에 마치 자기가 여심폭포의 임자인양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그 큰 남근석을 하늘을 향해 치켜세우고 있다.
여심폭포부터 등선대(登仙臺)에 이르기까지 300여m, 30분 구간은 가파른 계단 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깔딱고개라 할 만큼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숨을 헐떡거리며 20여분 올라가면 안부 삼거리에 올라선다. 거기서 왼편 등선대로 올라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서 오른편 주전골 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거기 이정표에 ‘흘림골입구 1.2km, 약수터입구 5.0km, 용수폭포입구 2.8km’라 적혀 있고, 또 하나의 이정표엔 ‘여심폭포 0.3km, 등선폭포 0.4km’라 적혀 있다.
거기서 다시 숨 가쁘게 6~7분 올라가면 등선대 정상이다. 과거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했다고 하나 지금은 계단이 조성되어 있고, 정상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신선이 놀다가 간 곳이라고도 하고, 선녀가 하늘로 올라간 곳이라고도 하는 등선대(해발 1,002m)는 흘림골 산행의 절정이며, 남설악 최고의 전망대이다. 정상은 의자바위라고 불리는 큼직한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자 바위
등선대 정상에 서면 신선만 하늘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거기 서 있는 자신조차 허공에 둥실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고, 시야가 시원히 트여 사방으로 펼쳐지는 남설악 일대의 기암 절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이 일대 기암들이 현란하게 군락을 이룬 곳을 만물상이라 하고, 등선대는 그 만물상 한가운데 놓여 있는 것이다.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면 칠형제봉 너머로 한계령휴게소와 안산(1,430m), 귀때기청봉(1,578m)이 다가서고, 동북쪽으로는 게바위, 거북바위 너머 대청봉이 우람하며, 그 옆으로 오색지구와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점봉산 능선 일대에 만 가지 형상의 암릉이 도열해 있다.
왼편이 게바위, 오른편이 거북바위
등선대에서 안부 삼거리로 되돌아 내려와서 십이폭포 쪽으로 내려가는 길 역시 급경사 계단길이다. 수해 이후에 등산로를 복구하면서 등산로 대부분이 나무 데크에 폐타이어를 잘라 붙인 계단 길이 조성되어 있다. 따라서 편안한 일면도 있으나 흙이나 바위를 밟아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져서 자연스럽지 못한 점이 아쉽다.
계곡을 내려가면서 위쪽을 올려다보면 비경이 그대로 살아 있으나 아래 계곡 쪽을 내려다보면 수마가 할퀴고 간 자국이 마치 폐허처럼 처참하다.
등선대를 내려서면 등선폭포, 주전폭포 등이 있다고 하지만 눈여겨 볼만한 폭포가 아니어서 그냥 지나치게 된다. 흘림골은 경사가 급해 비 온 후에 물이 쉬이 말라서 그런지 아니면 수마로 물길이 딴 곳으로 가버려서 그런지 계곡에 수량이 적어서 폭포가 우렁차지 않은 것이 아쉽다.
주전폭포
등선대 이후엔 중간에 잠깐씩 오르막이 있기는 하나 대부분 내리막길이고, 등선대에서 30~35분 정도 내려가면 둔덕을 향해 5~6분 오르막이 이어진다. 십이폭포 상단으로 가는 오르막인데, 오르막 정상엔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고, 거기서 뒤돌아보면 등선대 일대의 암봉이 잘 보인다.
십이폭포
그리고 다시 내리막을 내려가면 물소리가 요란하고, 그 아래쪽에 십이폭포가 있다. 열 두 굽이를 굽이친다고 하여 십이폭포라 하며, 폭포는 전체적으로 와폭이다.
무명폭포
십이폭포를 뒤로 하고 내려오다가 보면 중간 왼편 계곡에서 흘러드는 무명폭포가 오히려 이름 있는 폭포들보다 더 멋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폭포를 주전폭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어서 암반에 소를 이루고 있는 곳이 옥녀탕이다.
옥녀탕
그리고 십이폭포에서 20여분 내려가면 용소폭포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주전골삼거리)가 나타난다. 거기 이정표에 ‘용소폭포 입구 0.5km, 흘림골입구 3.5km, 약수터입구 2.7km’라 적혀 있다.
여기서 십이폭포 쪽에서 흘러내린 물과 용소폭포 쪽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나 수량이 늘어나고, 이 삼거리를 경계로 위쪽이 흘림골, 아래쪽이 주전골이다. 지형도 상엔 주전골을 큰고래골이라 표기하고 있다.
주전골이란 예전에 스님을 가장한 도적들이 바위 동굴에 숨어들어 위폐(위조 엽전)를 주조하다가 들켜 일망타진 된 후 주민들이 그들이 숨어있었던 골짜기를 주전골이라 한 데에서 얻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주전골삼거리에서 용소폭포 입구까지는 0.5km이지만 용소폭포까지는 300m, 왕복 5~6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용소폭포
예전에 용소폭포의 소에 이무기 한 쌍이 살며 승천하기 위해 1,000년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승천하게 된 찰라 암놈 이무기가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승천할 기회를 놓치고 폭포 옆의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이무기란 물속에 사는 큰 구렁이를 말하며, 1,000년이란 용의 턱에 붙어 있는 여의주(如意珠)를 완성하는데 걸리는 기간이라고 한다.
주전골 암벽
용소폭포에 갔다가 도로 주전골삼거리로 되돌아와서 오른편 주전골(큰고래골)로 내려서자마자 길가에 석문(금강문)이 있다.
금강문
오색 쪽에서 올라올 경우엔 이 석문을 지나면 십이폭포, 용소폭포 등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다고 하여 금강문이라 했다고 한다. 사찰에서 일주문을 지나면 금강문(혹은 천왕문)을 통과하여 본체로 들어가게 되는데, 금강문을 지날 때 온갖 잡귀가 제거되고 아름다워진다고 본다. 이러한 불교사상에 의거해서 사찰의 금강문을 지나듯 주전골 금강문을 지나 올라가면 잡귀가 없어지고, 순수한 몸과 마음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다고 하여 이 석문을 금강문이라 한단다.
금강문을 지나 10여분 내려가면 넓은 마당바위가 나타나기 직전 아름다운 소가 있다. 그곳이 선녀탕이다.
선녀탕
선녀탕에서 다시 5분 정도 내려가면 왼편에서 지계곡이 주전골로 합류해 온다. 그 지계곡을 온정골이라 하고, 등산로는 그 지계곡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가는데, 다리 아래쪽이 과거 제2약수터가 있었던 곳이다. 원조 오색약수터에서 1.5km 정도, 성국사에서 300여m 상류이다.
제2약수터가 있던 곳
예전엔 제2약수를 안내하는 팻말조차 없어서 일반인은 대부분 지나다니면서도 제2약수가 있는지 잘 몰랐다. 그러던 것이 오색약수가 퇴색하면서 그 대안으로 한 때 제2약수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었다.
원조 오색약수는 조선 중기에 오색석사의 한 스님이 발견했다고 하며, 약수공이 3개 있다. 아래쪽 물가에 두 개, 거기서 10여m 위에 한 개가 있어서 아래쪽은 남성들이 마시는 양수요, 위쪽은 여성들이 마시는 음수라 한다. 그리하여 1970년 대 중반까지는 하루 용출양이 5,000ℓ 정도 되었다고 한다.
오색 약수터
그러던 것이 1990년대부터 갑자기 용출량이 줄어들어 이젠 약수 한 모금 마시기 위해 한참동안 기다려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주민들은 1994년 오색에 들어선 그린야드 호텔 측에서 온천장의 온천공을 뚫으면서 약수가 지나는 수맥을 건드렸기 때문이라 하여 법정 공방까지 벌였다. 이러한 오색약수의 대안으로 떠 오른 것이 이곳의 제2약수였던 것이다.
그런데 루사태풍(2002년 8월)과 매미태풍(2003년 9월), 그리고 2006년 폭우로 인하여 설악산 일대가 휩쓸려 내려갈 때 이 제2오색약수터도 수마에 할퀴어 흔적조차 없어져버렸다. 아직도 제2약수터로 내려가던 계단은 그대로 있으나 약수터 자리는 마당바위가 대신하고 있다. 수마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이 제2약수터를 내려다보면 실감할 수 있다.
제2약수터에서 10여분이면 성국사에 닿는다. 성국사(城國寺)는 옛날 오색석사(五色石寺) 터에 새로 지은 절이다. 전설에 의하면 절 후원에 다섯 가지 색의 꽃이 피는 나무가 있어서 오색사라 하였다고 한다. 경내엔 원래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탑이 두 기 있었으나 동쪽 탑은 허물어져 파편들만 남아 있고, 서탑(오색리 삼층석탑)은 1968년 복원되어 보물 제497호로 지정되었다.
성국사 앞 이정표엔 ‘성국사 해발 380m/약수터 1.2km, 12폭포 2.4km, 등선대 3.8km’라 적혀 있다. 성국사에서 15분 정도 내려가면 오색약수터에 닿는다.
글쓴이 - 아미산(춘천 매일산악회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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