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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행/길(trekking)

서백당(書百堂)가는길

by 들꽃 처럼 2015.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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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3.8[일요일]


오늘은 경주시 강동면 소재지에서 양동 민속마을까지 걸어볼까 합니다

영일대 해수욕장 앞에서 700번 좌석버스로 강동까지 이동합니다




강동다방" 저앞에 보이는 철길 굴다리를 통과해 우측으로 진행합니다




산행들머리








유난히 고사목이 많습니다




산 정상이라는 이곳 체육시설이 있는곳에서 우측으로 진행합니다




이곳에서 임도를 만나게 됩니다

임도를 따라 계속진행합니다




월성 손씨 묘지"

이 근처엔 거의가 월성손씨 아니면 창녕조씨 묘지가 많군요




나무에 걸여있는 화살표 방향으로 가면 안개땜 삼거리가 나옵니다

바로 그기가 양동마을 뒷쪽이 되겠습니다








안개땜




양동마을 뒤 안개땜 삼거리지점


















서백당(書百堂)


지금의 양동마을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여강(驪江) 이씨와 월성(月城) 손씨 양성집성촌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이 지역은 신라시대 때는 아산(牙山) 장씨(蔣氏)가 처음 부락을 열어 양좌촌(良佐村)이라 칭했다고 합니다.

이후 고려시대 때는 오씨와 장씨들의 세거지였다고 합니다.. 고려 말에 이르러서는 여강 이씨 이광호가 양동에 거주를 하게 되었고

이광호의 손자 사위가 된 풍덕 류씨 류복하가 처가를 따라 이 마을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현재의 이씨와 손씨 양성집성촌의 형태를 갖춘 것은 15세기 중반.. 이 곳 양동으로 入鄕을 한 여강이씨 손소(孫昭,1433-1484)이후가 됩니다.

당시 손소의 장인인 류복하(柳復河)는 이 지역의 만호(萬戶)였는데 슬하에 무남독녀인 까닭으로 사위 손소는장인 류복하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어 이 지역의 유력자가 됩니다. 

여기에 이광호의 5대 종손이자 회재 이언적의 아버지인 이번이 이번엔 손소의 고명딸에게 장가를 들면서 이 마을은 손씨와 이씨가 세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손씨 집안에서는 손소의 둘째 아들로 벼슬이 정2품 의정부 우참찬에 이른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1463-1529)이라는 걸출한 인재가 배출되었고,

이씨 집안에서는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란 인물이 나오게 됩니다.

이후 지금까지 손씨와 이씨 두 문중의 세거지로 유명세를 떨치며 문과급제 26인, 무과 14인, 사마 76인을 배출하였고, 최근에는 장관 2인,

판검사 30인을 배출했다고 합니다..(양동민속마을, 경주시, 2006)

양동마을의 두 성씨는 ‘대립과 조화’를 반복하며 현재에 까지 이르고 있는데 이 마을에는 두 성씨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양동은 외손 마을’이라는 재미있는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동해남부선


"양자동 간이역"


이제는 열차도 정차하지 않는 이 역에...

고3시절에 영원히 잊지못할 추억이 서려있는 역인데 오늘 이앞을 걸어보니

고등학교 학창시절의 추억이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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