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6
운곡서원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
운곡서원[雲谷書院]은
가을이며 노랑으로 물든 은행나무의 아름다운 가을 빛을 사진으로 담으려는 진사님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운곡서원 은행나무는 수령이 무려 370 년 된 노거수이다
포항지진이 세상을 놀라게 한 다음 날, 경주 유적지를 걷고 돌아오는 길에 운곡서원으로 갔다
노랑 은행잎은 거의 다 떨어지고 얼마남지 않은 은행나무 잎새는 그 품위를 잃지 않고 아름다운 화려한 빛을 발하고 우뚝 서 있다
운곡서원(雲谷書院)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의 왕신저수지 동쪽 청수골에 위치한 운곡서원은 고려 공신 안동 권씨의 시조 태사 권행, 죽림 권산해, 귀봉 권덕린을 제향하는 곳이다.
조선 정조 9년(1785) 후손들이 이곳에 추원사(追遠祠)를 세우고 권산해·권덕린을 배향해 오다가 고종5년(1868) 서원 철폐령에 의해 헐리었다.
그 뒤 광무 7년(1903)에 단을 만들어 제향하다가 1976년 신라 밀곡사(密谷寺)터로 추정되는 곳에 안동권씨 문중에서 중건하였다.
본당 (정면5칸, 홑처마 팔작지붕)과 경덕사(정면5칸, 측면2칸, 겹처마, 맛배지붕)가 있다.
권행은 본래 신라의 김씨로 고창군수로 있으면서 신라의 국운이 다함을 보고, 태조 왕건에게 귀의한 뒤 견훤을 격파하고 고려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태조가 '권행은 기미를 잘 알아 권도를 썼으니 권(權)에 능하다 하며, 권씨로 성(性)을 내리고 태사벼슬을 제수하니, 곧 안동 권씨의 시조가 되었다.
권산해는 권행의 후손으로 종부사첨정으로 있다가 단종이 귀양가자 벼슬에서 물러났고, 그 뒤 세조가 여러 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성삼문등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탄로가 나 잡히자 투신 자살하였다.
정조13년(1789) 관작이 복위되고, 같은 왕 15년 이조참판에 추증되고,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영월 장릉(莊陵)의 충신단(忠臣壇)과 동학사(東鶴寺)의 숙모전(肅慕殿)에 배향되었다.
권덕린은 권행의 후손으로 회재 이언적의 문하에서 수업하고, 명종 8년(1553) 25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예조정랑, 병조정랑 등을 역임하였고, 이언적이 유배지에서 죽자 그를 위해 옥산서원을 창건하였다.
선조6년(1573) 45세에 돌아가자 운천서원(雲泉書院)에 제향하였는데, 뒤에 이곳으로 옮겨 배향하고 있다.
운곡서원 은행나무
운곡서원 앞에 있는 이 은행나무는 죽림 권산해의 후손인 권종락이, 단종 때의 권산해의 억울함을 달래주기 위해,
서울을 왕래할 때 순흥에 있는 큰 은행나무의 가지를 꺽어다 심은 것이라 전한다.
밀곡사지(密谷寺址) : 부근에 와편이 다수 산재하며, 근간에 '密谷寺'名 기와편이 수습된 바 있어 신라시대의 '밀곡사'로 추정된다.
1976년 권씨문중에서 이곳에 운곡서원을 복원하면서 절터의 일부석재를 서원축대등에 이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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